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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혼자 보기 좋은 영화'조제, 그리고 호랑이와 물고기들'(고독,자기성찰,감정치유)

by 모세 김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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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주인공 바닷가에서 남자가 여자를 업고 웃고 있는 모습 행복한 시간

 
우연히 조용한 밤, 불을 끄고 노트북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이 좋아서 클릭한 영화였는데,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조제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녀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조용히 빠져나오는 경험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고 난 뒤의 울림 같았습니다. 사랑, 상실, 외로움, 그리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를 자기만의 세계까지. 이 영화는 혼자 있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고, 더 깊게 파고드는 힘이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조제가 보내는 시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외로운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좁은 집 안에 갇혀 있고, 휠체어 없이 이동할 수도 없고,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조제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거기서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책을 읽으며 세상 곳곳을 여행하고, 물고기와 호랑이를 상상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풀어냅니다.

저는 평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오히려 휴식처럼 느껴지지만, 가끔은 이유 없이 허전하고 슬퍼지곤 하죠.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시간도 그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제가 보여준 ‘혼자의 세계’는 외로움이 아니라 자존이었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녀는 "나는 혼자서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일상 속에서 그 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그림을 그리고, 혼자 잠드는 모습이 그저 쓸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건 나만의 시간이고, 나는 이 안에서 충분히 살아가고 있어’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전해졌습니다. 그 순간, 제 방 안 조명 하나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도 조제처럼 나를 감싸 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서사

조제와 츠네오.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스며들지만, 결국은 제각각의 세계로 돌아가는 그 흐름이 너무도 익숙해서, 몇 년 전의 제 기억을 조용히 떠올리게 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조제가 “사랑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관객 모두 알고 있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너무 아프게 전해졌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너와는 다르다’는 벽을 먼저 세우게 되는 감정. 그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자, 실망하지 않으려는 체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더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혹시라도 다가가는 순간 깨질까 봐 뒷걸음질 치던 시절. 그 감정을 조제가 너무도 조용히, 섬세하게 표현해 줘서 마음이 저릿했어요. 츠네오가 떠난 뒤에도 조제는 울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자신의 슬픔을 정리해 나가는 모습은 저에게도 위로였고, 한편으론 반성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온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겹치지 않는 두 세계를 잠시 포개는 것뿐이고,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 과정을 이토록 담담하게 그린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습니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나?’ 그런 질문이 제 안에 떠돌았습니다.

조제와 함께하는 조용한 위로

영화를 보는 동안 몇 번이나 숨을 참게 되었습니다. 누가 소리 내어 울면 깨질 것 같은 분위기, 대사보다 중요한 침묵, 눈빛만으로도 모든 감정을 전하는 인물들. 이 영화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우리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와 너무 잘 어울렸어요.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지 않아도 되고, 눈물이 흘러도 가릴 필요가 없고, 그냥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조제가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은 제 마음을 가장 세게 흔들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이별 후의 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지만, 조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슬픔만은 아니었습니다.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거니까요. 아무리 큰 이별이 있어도, 우리는 다시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또 살아가야 하죠. 조제는 그런 삶의 모습을 고요하지만 강하게 보여줬습니다. ‘이겨낸다’기보다는 ‘지나간다’는 느낌. 조용히, 묵묵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가는 조제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움을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거라 믿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제가 본 가장 조용한 영화이자, 가장 깊은 위로를 준 영화였습니다. 화려한 대사나 감정 폭발 대신, 조용한 일상 속에 묻어 있는 감정들을 그대로 보여줬고, 그 안에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 영화를 꼭 혼자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조제와 함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울어도 좋고, 아무 감정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느끼는 것. 조제는 그런 혼자만의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안아주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