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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글루머 선데이'(비극,사랑,역사)

by 모세 김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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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글루미 센데이 영화 포스터 사진

 

1999년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는 단순한 로맨스도, 단순한 역사극도 아닙니다. 한 편의 우아하고 치명적인 클래식처럼, 음악과 감정, 시대의 비극이 어우러져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실존하는 곡 '글루미 선데이'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여인을 사랑한 두 남자, 그리고 그 사랑을 파괴한 시대의 잔혹함을 다룹니다. 사랑은 끝까지 아름다웠을까요, 아니면 시대의 어둠에 무너졌을까요. 지금부터 이 영화를 세 가지 시선—곡의 전설, 사랑의 비극, 전쟁 속 인간성—을 통해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실화 기반의 자살곡, 글루미 선데이의 전설

글루미 선데이는 1930년대 헝가리 작곡가 레죄 세레르(Rezső Seress)가 작곡한 곡으로, 슬프고 절망적인 가사와 멜로디 때문에 ‘자살곡’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이 곡을 들은 수십 명이 자살했다는 도시전설이 생겼고, BBC에서는 한때 이 곡의 방송을 금지하기도 했죠.

영화는 이 전설에서 출발합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시가 이 곡을 작곡하면서 시작되는 파장은 단순한 예술적 감동이 아닌 ‘죽음을 부르는 음악’이라는 서늘한 무게를 지니게 됩니다. 이 곡은 영화 속에서 일레오나를 향한 사랑, 혹은 그리움, 혹은 포기 못할 소유욕의 상징처럼 묘사됩니다. 슬픈 사랑이 곡으로 태어나고, 곡은 사람의 감정에 스며들며 결국 죽음의 기운을 불러오죠.

흥미로운 건 영화가 이 곡의 전설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그 곡이 한 사람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곡이 무섭다’기보다, ‘감정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파괴적이 된다’는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은 분위기를 이끄는 장치이자, 사람들의 삶을 가르고 죽음을 부르는 정서적 무기로까지 격상되며, 극의 핵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세 사람의 사랑과 질투

영화의 중심에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 일레오나(Ilona)를 사이에 둔 세 남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를 사랑한 이는 두 사람입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대인 기업가 라즐로와, 감성적이고 예민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시.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독일군 장교 한스.

라즐로는 일레오나에게 안정적인 삶과 애정을 제공합니다. 그는 성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연인입니다. 반면, 안드라시는 예술적 감성과 열정으로 일레오나에게 접근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일레오나를 사랑하지만, 일레오나는 이 둘 사이에서 쉽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녀 역시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사랑은 처음에는 조화로웠고, 세 사람은 묘한 균형 속에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안드라시가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 후, 감정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질투와 소유욕,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이 겹치면서 안드라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남깁니다.

여기에 독일군 장교 한스가 등장하며 사랑은 더 복잡해집니다. 과거에는 일레오나에게 거절당했던 그가, 전쟁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돌아오면서 사랑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닌 ‘권력의 수단’으로 바뀌어갑니다.

‘글루미 선데이’는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 인간이 사랑 앞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전쟁과 인간성의 붕괴

영화의 중반부 이후, 나치의 점령이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집니다. 레스토랑은 독일 장교들의 모임 장소가 되고, 일레오나와 라즐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이때 한스가 다시 등장합니다. 과거에 일레오나에게 거절당했던 그는 이제 권력의 중심에 선 존재가 되었고, 그 권력을 이용해 일레오나를 억압하고, 라즐로를 협박합니다.

한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인물은 이제 공포의 상징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영화는 이 전환을 통해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랑이 증오로, 연민이 권력으로 바뀌는 순간들 속에서, 인간성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기와 계급, 폭력이 대신하게 됩니다.

라즐로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유대인들을 도와주며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선택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결국 사랑도, 생명도 모두 위협받게 되죠.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음을 고통스럽게 증명합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다시 부다페스트를 찾은 한 인물의 손에 의해 묻혀 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충격과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나도 인간의 죄는 사라지지 않으며, 때로는 ‘기억’이 가장 잔인한 심판이 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글루미 선데이’는 잔잔하게 시작하지만, 끝날 때쯤엔 무겁고 먹먹한 감정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사랑은 아름다우나 불안정하고, 음악은 위로이자 무기가 되며, 전쟁은 결국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 시대의 감정, 음악, 전쟁, 인간의 욕망을 모두 마주하게 됩니다. 진짜 감정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클래식 음악과 정적인 영상미, 강렬한 서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당신도 한동안 ‘글루미 선데이’ 멜로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